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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1년만에 아니다. 작년 설 이후로 처음이었으니 굉장히 오랫만에 맞는 명절이다.
그런데 예년에 비해 굉장히 썰렁하기 그지 없다. 복작복작대는 느낌도 없고 이번에는 전도 사버려서 일거리는 확 줄었고 대구 작은아빠네 식구들은 일이 있어서 못오고 ...

어제 오후에 장 보고 친척동생들 데리고 영화보고 집에오니 밤 11시가 다되서 티비 좀 보고 하다 다들 12시 반되서 자러가고 오늘 오전에 준비해서 차례 지내고 음식 먹고 당진 작은아빠네 바로 내려가고 우리 식구는 식기 정리하고 쓰레기들 정리하고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과 비교하면 정말 너무 다르다. 어릴 때는 TV에서 해주는 온갖 특집프로와 특선 영화들을 뒤로하고 시골에 내려가는 게 어찌나 싫던지(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계실 땐 집이 북적북적대고 사람많고 음식 준비하는 구경도 하고 소도 보고 하는 재미라도 있지 돌아가신 뒤로는 사람 살지 않는 집에 내려가서 있자니 정말 괴로웠음), 집에서 이렇게 쉬니까 편하긴하지만 점점 이렇게 갈수록 명절 분위기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좀 아쉽기도 하다. 나중에 내 아이들은 어떤 명절을 보내게 될지..... 그리고 요즘은 다들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부모님 세대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도 이렇게 민족대이동이 이루어질지 궁금해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정말 좋은 경험 많이 했다.
시골에는 보통 같은 성씨끼리 모여사는데 우리집이 큰집이어서 항상 우리 시골집에서 차례를 제일 먼저 지내고 그 다음 작은집, 남짜 등등의 순서로 돌아다니면서 제사를 지냈다. 명절 당일날 아침이면 마루에, 마당에 돗자리까지 깔고 동네 사람들, 여기저기서 모인 동네사람들의 출가한 자녀들까지 죄다 모여서 일제히 절을 올리고 하는 모습이 대단했다. 제사상을 차려놓은 방에는 짬(?)좀 되시는 할아버지들만 들어갈 수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다 모이신다. 전날밤에도 와주시고 명절날에도 와주시고 .. 물론 우리 할머니랑 엄마, 작은 엄마들도 다른 집에 가서 일 돕고 그런다. 나같은 어린애들은 옆에서 이것저것 주워먹기에 정신 없다. 그리고 밤에, 졸리면서도 어떻게든 하하호호  깔깔대는 웃음바구니 속에 끼어 있으려고 용을 쓴다. 그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힘들어 죽을려고 한다. 우리집에서 제일 먼저 차례를 올리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야하는데도....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 한복입고 인사드리고 세배드린다고 복주머니 차고 아빠랑 같이 돌아다니면서 나름 이쁨, 귀여움 꽤나 받았었다. 매년 내려갈 때마다 아이고 많이 컸다~ 소리는 기본..

우리 시골집은 정말 '시골집' 이었다. 사랑채있고 소 외양간도 있고 부엌에 아궁이도 있고 솥단지에 밥 짓고 장작때고 나무로 대들보 세우고 흙으로 지은 집. 부엌이랑 방이랑 떨어져 있어서 매번 신발 신고 왔다갔다 해야하고 화장실은 푸세식이고 따로 씻을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냥 밖에 수돗가에서 씻는다. 뜨거운 물도 안나오고 겨울에는 수도가 얼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우와..진짜 어떻게 가서 지냈는지..특히 겨울에. 우리 엄마 진짜 대단하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시골 가난한 집 장남한테 시집가서 비록 명절때 뿐이긴 하지만 어떻게 있다 왔는지..맏며느리니까 일도 많이하고 편히 있지도 못했을텐데.. 여름 휴가 때마다 10년 넘게 시골 갔었는데 나야 그냥 단순히 매번 가는데 또 가고 또 가서 싫었을 뿐이지만 엄마는 .. 이건 휴가도 아니고 .. 아침에 매번 새벽같이 일어나고 끼니 때마다 밥 차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과수원 일도 돕고..
대단한듯..

아무튼 자꾸 얘기가 여기저기로 픽픽 새나가는데 .. 결론은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 .. 이젠 더이상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계시고 소도 없고 소여물 만드는 모습도 못보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딱딱하고 거친 손도 못보지만...  참 그립다. 모기 물려서 가려울 때 대청마루 나무에 대고 긁으면 정말 시원했고 그 속에 기어들어가서 강아지들 꺼내오고 광 천장에 메주 달려있고 .. 비 오면 수돗가 근처에서 청개구리 보고 .. 마당에 장작 쌓아놓고 ..

시골에 가면 그냥 보리밥에 된장, 나물, 간장해서 비벼먹기만 해도 어찌나 맛이 있던지 ..

할머니가 지금 날 보시면 ' 아이고 민선이~ 많이 컸네~ 외국도 가고 장하네 ~ ' 이러실텐데.. 비록 내가 서울대를 못가서 상심은 아주 쪼끔 하셨겠지만 ..그래도 ' 외대합격~' 이러면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내가 전액장학금 탄거 인턴 다녀온거 이런거 다 자랑하고 그러셨을텐데..
아빠 성적표 보면서 내가 1등 아니었네요. 하니까 그게 매력이라면서 장남편을 드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경상도 남자답게 굉장히 무뚝뚝하셨다. 그리고 한문 책을 많이 보셨고 여자 아나운서들을 좋아하셨으며 KBS 1TV에서 8시 반에 하는 일일드라마 + 9시 뉴스 콤보를 꼭 챙겨보셨다. 할머니도 일일드라마 좋아하셨지. 난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바람은 불어도'를 알았다.

아, 계속 쓰다보니 밑도 끝도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고 시골이 그립다. 내가 이런데 아빠랑 고모, 삼촌들은 오죽 할까


명절때만 되면 참 시골 생각이 많이 난다. 지금은 많이 썰렁해졌다. 집도 신식집으로 다들 많이 새로 지었고 .. 예전같은 왁자지껄함, 북적거림 등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예전처럼 5-6시간 걸리면서 차 타고 밤에 도착해서 하늘에 별 많다고 좋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겨주시는 손길을 느끼고 할머니가 만드신 수건 이불 덮고 자고 싶다. 제일 아랫목에서 자면 등짝이 구워지는 느낌에 도저히 잠들수가 없었는데 ... ㅎㅎㅎ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즐거운 추석 보내셨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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