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상/먹부림 기록

손님 초대

나실이 2014. 11. 21. 06:58

  2주전인가 3주전에 (벌써 가물가물) 처음으로 집에 사람들을 초대했다. 예전부터 불러서 같이 술 마시면서 놀고 싶었지만 집이 작기도 하고 살림살이도 좀 너무 단촐하고 그래서 계속 포기했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으로 와인 5병을 질렀고 이 와인들이 너무 마시고 싶은데 둘이서는 1병도 겨우 마시는 게 아쉽기도 하고 그냥 사람들하고 맛있는 거 먹고 마시고 놀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에잇 모르겠다 하고 초대 시전 ㅋㅋㅋㅋㅋㅋㅋㅋ 


  한식은 너무 어렵고 손이 많이 가므로 서양식(?)으로 정하고 브루스께따 두 종류, 가지 라자냐, 스페인식 오믈렛인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 링오징어 구이, 해물 파스타, 생햄 및 치즈 모듬 이렇게 준비했다. 요리들이 다 어려운 건 아니었는데 내가 한 요리를 남한테 대접하는 게 거의 처음이라서 마음의 압박감 때문에 조금 힘들었다. 힘들었다기보다는 막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시간 내에 다 해놓을 수 있으려나, 망해서 맛 없으면 어떡하지 으으 혼자 안좋은 상황을 상상하면서 끙끙댔다 ㅋㅋㅋㅋㅋ 나는 뭘하든지 간에 잘 됐을 경우보다는 안됐을 경우에 매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그래서 손님 초대한 날 먹고 마신 사진들 다 나간다. 해물 파스타 사진, 가지 라자냐 완성 모습, 나무 도마에 서빙한 생햄 및 치즈 모듬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쉽다. 



                                                                               링 오징어 구이


  베이비 오징어를 살까 하다가 링 오징어가 kg 당 1유로가 더 비쌌지만 다 씻겨져있고 손질도 되어 있어서 편하게 요리하려고 샀었는데 두꺼워서 잘 익지도 않고 별로였다. 그나마 후라이팬에 올리브유 두르고 꾹 누르면서 오랫동안 지져주니까 먹을만했다. 근데 나만 그랬는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ㅠㅠ



파프리카 부르스께따


  냉장고에서 시들해져가는 파프리카 구출 작전. 호일로 파프리카를 감싼 다음에 오븐에 넣고 약 200도에서 30분 정도 구워준다. 오븐에서 꺼낸 직후는 엄청 뜨거우니까 좀 식기를 기다렸다가 겉에 파프리카 껍질 대충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올리브유 휘휘 둘러서 절여 놓는다. 이렇게 해놓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브루스께따로 해먹어도 좋고 샌드위치, 파니니 속에 넣어도 되고 피자 만들에 위에 토핑으로 올려도 되고 고기 먹을 때 곁들어도 되고 오이 피클처럼 먹어도 되고 뭐 얼마든지 각자 원하는대로 활용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좀 귀찮은 짓이라서 그냥 슈퍼에서 구운 파프리카 절임 사다 먹으면 완전 간단하고 편하니 직접 만들지, 사다 먹을지도 본인이 편하는대로 선택하면 됨! 


  방울 토마토 브루스께따도 만들었는데 사진이 이상해서 안 올린다. 방토를 적당히 잘라서 올리브유, 소금 약간, 레몬즙 약간(생략 가능), 바질잎 다진거 약간해서 섞어준 다음 구운 빵 위에 올려주면 된다. 


  그리고 브루스께따 맛의 핵심은 마늘이다. 마늘 !!!!!!!!!!!!! 그동안 레시피에 보면 생마늘을 구운 빵 위에 문질러주라고 되어 있는데 이 과정이 너어어무 귀찮게 느껴져서 몇 년 동안 무시를 하다가 처음으로 해봤는데, 한거랑 안한거랑 맛이 천지차이!!!!!!!!!!! 그동안 왜 내가 만들면 밖에서 사먹는 브루스께따 맛이 안나는걸까? 똑같이 바질도 넣고 했는데 향이 왜 다를까? 궁금했는데 마늘이었다.............이 간단한 것을 이제야 알았다니. 앞으로 레시피는 아무리 간단하고 별거 없어보여도 무시하지 맙시다......... 


  바게뜨를 잘라서 굽던, 치아바타를 잘라서 굽던간데 잊지 말고 꼭 생마늘을 문질러줍시다. 마지막에는 다진 파슬리 흩뿌려주면 완성. 오븐에서 나온 직후의 빵들로 브루스께따를 만들어서 먹으면 여기가 바로 이태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 날 계획으로는 사람들 도착 10분 전에 오븐에 빵을 넣어서 바로 서빙하려했는데 맘이 불안해서 그냥 좀 미리 만들어놔서 이태리가 느껴지는 맛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파프리카 얹은 게 더 좋았는데 다들 방토 얹은 걸 좋아했다. 





가지 라자냐 (원래 명칭 : Melanze alla parmigiana)


  정말 쉬운데 만들어 놓으면 있어 보이는 요리중 하나. 일단 치즈 넣고 오븐에 구운 요리는 뭐든지간에 그걸로 게임 끝이라고 생각한다ㅋㅋㅋ 토마토 소스를 직접 만들어도 되지만 나는 그냥 파스타 토마토 소스 바질맛 이런거 사서 한다. 위 사진 2개는 각각 다른 날 찍은거라서 오븐에서 나온 사진에 바질잎이 없다. 바질잎 얹어서 구워주면 향이 더 좋다. 


 * 가지 라자냐 레시피 참조 -> 2010/03/19 - melanzane alla parmigiana




루꼴라 샐러드


  이건 그냥 루꼴라 샐러드? 루꼴라, 빠르미쟈노 레쟈노 치즈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호두 같은 견과류나 방울 토마토 추가한 다음에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뿌려주면 된다. 빠르미쟈노 대신에 모짜렐라로 해도 되고 두 가지 치즈 다 넣어도 상관 없다. 루꼴라 맛이 쌉싸름해서 부드러운 모짜렐라 치즈가 한국 사람한테는 더 맞을 것 같다. 나는 처음에는 빠르미쟈노 하고 두번째에는 모짜렐라도 넣고 결국은 다 먹었다 ㅋㅋㅋㅋㅋㅋ


  원래는 시저 샐러드나 리코타 샐러드를 할까 아니면 삶은 계란, 올리브, 에멘탈 치즈 이런거 다 넣고 허니 머스터드 드레싱이 어울리는 샐러드로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냥 제일 간단하고 와인과도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서 루꼴라 샐러드로 결정. 리코타 샐러드로 괜찮긴한데 치즈가 깔끔하게 안떠져서 여럿이서 먹기에는 별로 같아서 안했다.





  쨔쟌. 식탁에 다 올려 놓으면 이런 모습! 또르띠야데빠따따스(스페인식 오믈렛)는 독사진을 안찍었다. 사실 손님 초대 욕구에 불이 붙은 계기가 초대하기 2-3주 전에 스페인 와인 마시려고 또르띠야데빠따따스를 처음으로 만들어봤었다. 인내심이 필요해서 그렇지 요리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성공(?)했고 햄하고 오믈렛만 먹기에는 허전해서 가지 라자냐도 같이 했었다. 그런데 해놓고보니 좀 그럴듯해보이고 이 정도면 크게 힘들지도 않고 해볼만하다 싶어서 손님 초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ㅋㅋㅋㅋ


  배부르게 잘 먹고 마시고 재밌게 놀았는데 한가지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주황색 접시 하나 깨먹었다ㅠㅠ 내가 자주 사용했으면 덜 슬펐을텐데, 크기가 커서 설거지가 귀찮고 센스 없는 내가 주황색 접시와 조화를 이루는 요리를 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모셔놓고만 있었던지라 정말 안타까웠다 ㅠㅠ 흑..저렇게 하얀 식탁에 올려 놓으니 포인트도 되고 좋은데 좀 자주 쓸걸... 


  내가 접시 깨고나서 사람들한테 관련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줬다. 오래전에 로마에 있었을 때 기자 출신 핀란드 집주인 할머니와 같이 살았었다. 나는 따로 주방도구를 하나도 안사고 할머니가 같이 쓰게 해줬는데, 하루는 내가 컵 하나인가 두 개를 깨트렸다. 나는 너무 미안해서 계속 사과하고 새로 사주겠다고 막 그랬는데, 할머니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사람들이 보통 뭔가를 깨먹었다고 했을 때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과 너무 달랐다.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컵을 깼다는 내 말에 할머니가 한 첫 마디가 'They are not forever.' 였다. 응......?! 난 처음 듣고서는 이게 뭔 소리인가 몇 초간 좀 황당하기도 했다. 보통은 다치지 않았냐고 묻거나 왜 깼냐고 타박을하거나 (주로 가족간에 이러겠지 ㅋㅋㅋ)  아니면 그냥 예의상으로라도 괜찮다고 할텐데 이 핀란드 할머니의 관점은 정말 독특했다. 그 컵들이 천년만년 영원히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없어지는 물건이니 깨트렸다고 문제될 건 전혀 없다는 식의 태도였는데 난 이런 발상은 정말 처음 봤고 이 할머니의 엄청난 창의성에 감탄했다. 그래서 당시 깨진 컵 조각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한국에 갈 때 가져가서 책꽂이 한 켠에 놔두기까지했다. 엄마가 나중에 그 조각을 보더니만 너 이런거 절대 안모으는데 왜 갖고 왔냐고 그렇게 아끼는거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얘기를 내가 싸이에 올렸을 때도 무반응이었고 엄마, 올빠, 다른 친구들한테 말했을텐도 마찬가지였고 이 날 사람들 초대해서 얘기했을때도 다들 ' 음............그래서 어쩌라는거죠 ^^;;;;;;; ' 이런 얼굴이어서 그냥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나는 할머니의 저 한마디가 정말 평생토록 잊을 수 없고 인생의 깨달음까지 줄 정도였는데 나만 이런거 같다.........아니면 내가 얘기를 재미없게 잘 못했거나 ㅜㅜ 아무튼 이 일 뒤로는 내가 뭘 깨먹거나 깨진 접시 같은 걸 볼 때마다 할머니 잘 살고 계신지 가끔씩 궁금하다. (가끔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자주 깨먹지만;;)



마지막으로 손님들과 마신 와인들


  왼쪽부터 스페인 와인 Solanera. 로버트 파커 점수 94점이라길래 샀다. 맛있었지만 감초향이 계속 나서 좀 싫었다. 왼쪽 두번째는 부르고뉴의 유명한 와인 양조자인 루이 쟈도의 가장 아래급 와인. 명칭이 따로 있던데 잊어법렸다. 루이 쟈도라는 이름 때문인지 하위급 와인 치고는 값이 15유로 정도로 비쌌다. 가운데는 로버트 몬다비 샤도네이 화이트 와인. 오른쪽 두번째는 신의 물방울에 나왔던 이기갈(E.GUIGAL) 와이너리의 GIGONDAS 2010년 빈티지. 마지막으로 엄청난 남성미를 뽐내는 병의 와인은 스페인 리오하 와인. 


  일단 처음에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레드와인들을 쭉쭉쭉 마셨는데 순서를 잘 못 맞추고 와인을 좀 미리 열어놨어야하는데 그러질 못했고 다들 생각보다 술을 빨리 마셔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인 맛 자체는 100% 즐기지 못했다. 그치만 맨날 둘이서 마시다가 남들하고 같이 마시니 여러 와인을 마셔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후 쓰다보니 또 얘기가 엄청 길어졌네. 전전날, 전날에도 장보고 햄과 치즈들 좀 비싼거 사고 (허셐ㅋㅋㅋㅋ) 당일에 집 청소하고 이리저리 준비하느라 힘들긴했지만(당일에 나는 어쩌다보니까 저녁 먹기 전까지는 물 한 컵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잘 놀아서 좋았고 왠지 뿌듯하기도 했다. 딱 하나 빼고는. 그건 바로 다음날 설거지!! 사실 양은 아주 많지 않았는데 싱크대가 작다보니 부엌에 산처럼 쌓였다. 아 식기 세척기 너무 사고 싶은데 설치할 자리가 없다. 자취생활 또는 결혼 생활의 필수품 0순위는 식기 세척기라고 아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식기 세척기 사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