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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비소에 배터리 교체를 맡기고 왔다........ 내 돈 ㅠㅠㅠㅠ 빡친 마음을 블로그로 풀어야지........ 







  석가탄신일에 어머님과 같이 길상사에 다녀오고 일주일 뒤에 엄마, 작은 엄마, 사촌동생과 같이 한번 더 다녀왔다. 어머님은 길상사에 자주 다니시고 엄마는 처음 가본거였는데 서울에서 태어나셔서 시내 광화문, 종로, 동대문 이런 쪽 안다녀보신 곳이 없을 거 같은데 처음이라고 해서 놀랐다. 맨날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못 갔다고. 겨울에 눈 왔을 때 꼭 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다음에 같이 갈 날이 오겠지. 


  길상사 안에 진영각이라고 법정스님의 진영을 보시고 스님이 저서와 유품을 전시해놓은 곳이 있다. 엄마랑 갔을 때 어떤 스님 한 분이 오셔서는 인사드리고 그냥 서 있는데 갑자기 막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사촌 남동생하고 같이 있었는데 보더니 여자친구랑 왔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촌동생 이제 대학교 2,3학년이고 군대도 안갔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도 연상연하 커플인 줄 아셨겠지...........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ㅎㅎ 동생은 싫었겠지만. 


  아무튼 깜놀해서 아니라고 얘기하고 난 결혼했다고 하니 애는 있냐 없냐 왜 안가지냐 막 이러면서 갑자기 호구조사 들어가셔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막 길상사 와보니까 어떠냐고 감상도 물어보셨는데 이 때 마침 진영각 내부를 보고 엄마가 나왔고 스님하고 갑자기 이야기 시전.. 나는 옆에서 아니 무슨 스님이 저렇게 오지랖이 넓으시지? 동네 아저씨도 아니고... 뭐야 초면인데 개인적인 걸 왜 이리 물어봐?? 이러면서 좀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내가 누군지 아냐고 하시길래 모른다 하니 주지 라고.................네?????네에??????????? 진짜 놀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내가 생각하던 주지스님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정체를 밝히신 스님은 우리더러 따라오라고 하시더니 달마도 그림을 한 장씩 나눠 주시고 지갑에 넣을 수 있는 달마도 카드(?)도 주셨다. 오지랖 넓은 아저씨 같다고 해서 죄송해요;; 


  아마도 이 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나오셔서 말도 걸어주시고 그림도 주고 하신 것 같다. 이 때 메르스가 한창 발병했을 때였는데 원래는 일요일이면 바글바글한데 메르스 때문에 많이 줄은 것이라고 하셨다. 아무튼 주지스님 덕분에 뭔가 좀 더 기억에 남는 길상사 방문이 되었다. 


  길상사는 굳이 불교가 아니어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 같다.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절이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건립에 관한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길상사를 무상 보시한 길상화 보살님이 시인 백석과 연인 사이였다는 이야기도 신기하고 이 넓은 땅을 그냥 보시한 사실도 대단하다. 길상사에 얽힌 이야기들은 찾아보면 볼수록 흥미로운데 이건 직접 방문해서 알아가는 재미를 위하여 적지 않겠다. ㅎㅎㅎ





  쨘- 여긴 어디일까요. 심우장 이라고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내다가 떠난 곳이다. 나는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엄마가 또 어떻게 알고는 가보자고 해서 왔다. 길상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이고 골목길들을 지나와야 하지만 표지판이 매우 잘 되어 있어서 길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그리고 골목들을 지나면서 빈부격차를 진짜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좀 묘하다. 알다시피 길상사가 있는 성북동은 부자 동네로 유명해서 절 근처에 있는 집들이 다 으리으리하다. 그런데 이 집들 바로 뒷편에 보면 옹기종기 작은 집들이 붙어 있고 이 집들이 있는 곳은 다 높고 가파른 언덕, 사람 한 두명 밖에 못 지나가는 비좁은 길에 위치해있다. 아주 크고 넓은 집과 아주 작은 집들이 서로 이웃하고 있는 그 모습이 뭐라 표현은 잘 못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좀 씁쓸한 마음이다. 







 심우장의 내부 모습들인데 작고 아담하니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앞에 마당도 널찍해서 좋다. 특이하게도 집이 북향인데 그 이유가 남향으로 하면 조선 총독부 청사를 마주 보게 되어서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와........... 이 얘기 듣고 정말 ㅜㅜ 한용운님 ㅜㅜ 이런 분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인데 요즘 나라꼴이 참 에휴..  


  심우장 내부에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와 집 관련해서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 있기 때문에 아무런 지식 없이 가도 충분히 감상하고 올 수 있다.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갔는데 설명들 읽다보니 막 또 ' 일본 나쁜놈들!! ㅠㅠ' ' 친일파 개객끼 !!! ' 막 급 열이 받았다 ;; 





  마당 한 켠에 스탬프도 있어서 기념으로 찍어갈 수 있다. 이게 뭐더라.. 무슨 서울 시내 문화 유적지를 돌면서 스탬프를 모으는 그런 수첩도 있는 것 같았다. 올레길 마냥 무슨 이름을 붙여서 부르던데 기억이 안난다. 마침 내가 갔을 때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성인 남성과 같이 왔던데 아마도 견학하러 온 것 같았다. 




  내부에 한용운 스님의 책과 신문기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엄마가 이 빨간색의 님의 침묵을 보더니 우리집에도 저게 있다고 해서 기념삼아 찍었다. 저 책이 70년대쯤에 나온건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진짜 있었다!! (아래에 사진 나옴) 




  여기는 수연산방 이라는 곳인데 황진이, 왕자호동 등을 쓴 소설가 이태준의 자택이었으나 현재는 그 자손들이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심우장 바로 근처에 있는데 여기도 엄마가 가보자해서 갔는데 아쉽게도 공사중이어서 그냥 사진만 한 장 찍고 나왔다. 한옥이 아담하니 너무 예뻐서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돈 들어갈 거 생각하면 아후......  그냥 눈요기 한 걸로 만족해야지. 





  길상사 및 심우장 투어를 마치고 집에 와서 내 방 구석에 처박혀서 먼지 잔뜩 쌓인 책들을 막 뒤적거렸다. 여러권을 꺼내서 이리저리 책들을 훑어보는데 그 중 한 권 앞 표지를 젖히니 엄마가 책을 산 날짜와 장소를 간단하게 써놓은 걸 발견했다. 이걸 보는 순간 갑자기 파도 치듯이 온갖 감정과 생각들이 밀려 들었다. 천구백팔십이년 십이월 심삽일. 이 때 엄마 나이는 겨우 스물두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엄마의 글씨와 흔적이다. 스물두살의 엄마라니. 보기만해도 막 눈이 뜨거워졌다. 이 때 엄마는 4년 있다가 결혼하게 될 거란걸 알았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엄마도 꿈 많고 한창 청춘이었을텐데... 


  엄마가 산 책들을 보니 박목월, 김소월, 윤동주 시집들도 있고 이광수 무정 같은 소설책 등등 세로로 인쇄되어 누렇게 낡은 종이의 책들이 몇 권 나왔다. 누구나 다들 자기 부모님이 대단해 보이시겠지만 난 우리 엄마가 특히 그렇다.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전적으로 다 엄마한테서 영향을 받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각종 전시회에 다 데려가주시고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영화관도 엄마랑 처음 같이 갔고 신영복, 유홍준의 책들도 엄마가 봤던 책이 집에 있어서 알게 되었고 등등. 물론 이런 걸 보고 안다고 남보다 뛰어나고 모른다고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취향과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나에게 이런 것들을 좋아하게 해주어서 엄마에게 감사하다. 엄마가 만약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더 했으면 정말 재밌게 열심히 하셨을텐데. 아쉽다. 


  한편으로는 이런 엄마가 어떻게 아빠랑 만났는지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아빠랑 엄마의 성향, 취향은 정말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도대체 왜?! 두 분이 결혼하셨는지. 서로 달라서 끌렸으라나. 아니면 아빠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꽤 미남이시던데 엄마가 얼굴에 반했나 싶기도 하고 ㅎㅎㅎ 


 


  쌩떽쥐뻬리 라고 작가 이름이 매우 정직하게 쓰여 있는 어린王子. 초딩 때 집에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는데 어린 왕자만 그림이 있길래 아동용이겠거니 하고 이 책을 읽으려고 여러번 시도했었다. 그런데 코끼리를 보고 뱀이라 하고 상자에 무슨 양이 들었다고 그러는데 도대체 이게 뭔소리인지 너무 이해가 안되서 번번이 실패했었다. 지금은 아주 좋아하는 책!





  뚜둥!!!!!!!!!!!!!!!!!!! 아니 이거슨 중딩 때 국어책에 나왔던 딸깍발이!!!!!!!!!!!!!!!!!!!!! 와.......  손바닥 정도 크기의 문고판이었는데 70년대에 나온 책이라서 종이가 엄청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책값이 겨우 700원!!!!!!





  공포(?)의 세로읽기. 내가 초딩 때 까지만해도 신문들이 다 세로읽기였다. 그러다가 중앙일보에서 아마 맨 처음 가로 읽기로 바꿨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기네는 무슨 콩기름으로 인쇄한다고 이것도 홍보 엄청했었다. 







  쨔쟌- 심우장에서 봤던 빨간색 표지의 님의 沈默  우리집에도 있었다. 이 책 역시 세월의 흔적이 군데 군데 묻어 있다. 









  책 표지는 낡았으나 내부는 상태가 꽤 좋았다. 그래서 신나서 이리저리 펴서 읽어보는데 한문의 압박. 고등학교 가서 제일 좋았던 게 한문 과목이 없어서였을 정도로 한문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한글만 좀 보다가 답답해서 사진만 좀 찍고 덮어버렸다 ㅠㅠ 


  옛날 책들의 저 글씨체. 마치 타자기로 친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좋다. 실제로 타자기로 쳐서 인쇄한건가? 아무튼 왠지 느낌 있다. 서정적인 한용운의 시들과 정말 잘 어울린다. 그리고 오랫만에 님의 침묵과 다른 시들을 다시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시들이 다 너무 좋다. 







  위의 두 사진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시집을 찍은 것이다. 내가 예전부터 굉장히 사고 싶던 시집인데 집에 있는 줄도 몰랐었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자기가 산거 아니라던데 누가 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접시꽃 당신도 다시 보니 너무 좋았다. 다들 어떻게 하면 이런 시들을 쓰는지. 시인도 타고 나는 것 같다. 


  사실 예전에 내가 한번 집에 있는 오래된 책들을 다 버린 적이 있다. 엄마가 미혼, 결혼 초기 때 샀던 요리책이나 기타 다른 책들이었는데(주로 실용서였음) 내 방에 보지도 않는 오래되고 낡은 책들이 꽂혀 있는 게 너무 싫었다. 그리고 엄마가 물건을 항상 쌓아두어서 더 싫었다. 안보고 처박아놓은지 최소 5년은 훌쩍 넘었고 어차피 내가 버려도 찾아보질 않는 책들이니 버린 줄도 모를거라 생각해서 다 재활용으로 내놨었는데 이렇게 책 속에서 엄마의 흔적들을 발견하니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 엄마도 나름의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데 내가 뭐라고 갖다 버렸는지 ㅠㅠ 엄마도 엄마 말고 美玉 으로서의 인생이 있는데 말이다.






  옛날 책들을 뒤적거리다보니 저절로 추억은 방울방울 모드에 들어가서 필카로 찍은 사진 뭉텅이들을 꺼내봤다. 그 중 학교 모습을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2008년에 찍은건데 사진만 보면 70년대에 학교 다닌 줄 알겠다. 인스타에 올렸더니 동기들이 하는 말 ' 5공화국 시대 같다 ' ' 창문에서 화염병 날라올 것 같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없어진 구본관에 있던 동방에 붙어 있던 스티커를 찍은 사진이다. 동아리 진짜 열심히 했었다. 2학년 3월에 동아리 홍보 부스 운영할 때 동기들끼리 서로 공강 시간에 번갈아가면서 자리를 지켰었는데, 밥 먹으러 간다고 부스 비워 놓고 가는 동기가 책임감이 없어 보일 정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정적으로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 당연히 밥 먹으러 가는 게 맞는데 그 땐 왜 그리 이해가 잘 안됐는지. 밥 좀 늦게 먹거나 한 끼 굶는다고 어찌 되나?? 이렇게 생각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난척은 아주 그냥 혼자 다 했었네. 


  이렇게 열심히 했던 아이섹인데 지금은 애증이다. 그냥 친목 동아리, 운동 동아리 이런거 할걸 하고 후회도 된다. 지금 연락하는 동아리 사람들은 한 손으로 꼽고도 남을만큼 거의 없는데 그들한테 맨날 동아리 부질 없다고 징징댄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 몇 몇 남겨준 것에 고마워하기로 했다. 동아리 아니었으면 어디가서 그들을 만났겠나. 


  오글거리지만 나의 스무살은 동아리가 최소 팔할이었기 때문에 부정할 수가 없다. 흑흑. 그 때 과 동기들한테는 좀 소홀했었는데 정작 지금 연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기들이다. 역시 동기사랑 나라사랑 ㅎㅎ 놀아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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