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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유가 나온지 80일이 되는 날이고, 처음으로 다른 아기들을 만나고 왔다. 집 바로 근처에 산전 코스, 산후 운동 코스, 아기 발달 코스 등을 하는 곳이 있다. 아기 발달 코스는 PEKip 과 FABEL 이라고 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FABEL 코스에 빈 자리가 있어서 이걸로 신청했다.

Fabel 은 Familienzentriertes Baby-Eltern-Konzept, 영어로는 Family-centered baby-parents concept 인데 아기와 부모가 함께 모여서 얘기도 나누고 간단한 율동, 노래도 부르고 몸도 움직이고 다른 아기들도 관찰하고 하면서 발달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오늘은 첫 날이어서 서로 인사하면서 얼굴과 이름 익히고, 본인들은 어떻게 출생했는지 아기 수유 문제는 없는지 등등 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나는 발달 코스이기 때문에 강사가 어떤 동작을 보여주면 따라하고 이런거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약간 당황스러웠고 정말 간단한 것 말고는 알아 듣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질문이 왔을 때, 내가 독일어로 말을 잘 못해서 오늘은 그냥 듣고만 싶다고 했는데 다른 엄마가 영어로 해도 된다고 하자 다른 엄마들도 여기에 동의해줘서 영어로 간단히 한국와 독일의 출산 문화의 다른점을 말했다. 한국의 조리원에 대해서 말했는데, 갑자기 말해서 어버버하기도 했고 이유가 칭얼거리기 시작하고 다른 아기들도 소리 내고 이래서 정신 없어서 진짜 대충 말했다.

집에 와서 사이트 설명을 다시 보니, 신체를 움직이고 노래 부르고 게임하고 이런거 말고도 부모들간에 자유롭게 수유, 아기 발달, 산욕기, 수면 행동, 아기 다루기 등등에 대해서 의견 교환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모임 참가자들은 총 6명의 엄마와 6명의 아기들이고 다들 본인들 출산 경험이나 본인들이 태어났을 때, 수유 문제 등등 끊임없이 얘기 하였다. 하긴 한국어였으면, 나도 이런 저런 할 얘기들이 정말 많았을 것이다. 한 명 빼고는 다 첫째 아기였는데, 나도 그렇고 다들 처음이다보니 이게 맞는건지 저게 맞는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이 덜 되었지만 엄마가 주양육자이다보니 아기를 돌봐야하는 것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고 한데 서로 모여서 이런 얘기들을 나누면 공감도 되고 외롭지도 않고 기분 전환도 된다. 물론 나는 입을 다물고 눈치껏 대화 주제를 파악하기 바빴지만 말이다.

코스 가기 전에 집에서 미리 수유도 하고 제발 많이 보채거나 울지 않기를 바라면서 갔는데, 나의 걱정과 우려가 무색하게도 이유는 정말 얌전하게 잘 있었고 터미타임도 제법 오래했다. 집에서 있을 때랑 굉장히 달랐다. 일단 처음에는 집과 다른 장소인 걸 아는 것 같았다. 맨날 나랑 올빠만 보다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는 것 같았다. 옆에 아기를 빤히 쳐다보고 다른 엄마랑 아기가 노는 걸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터미타임을 특히 잘했는데, 집에서 할 때는 처음에는 잘 하다가 몇 분이 지나면 아악 이러면서 소리 지르고 자기 맘대로 안움직여지니까 짜증을 내는 듯한 소리를 많이 낸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고개를 들고 오래 있어도 소리를 전혀 안질렀다. 그리고 매트에 눕혀 놓아도 등센서가 작동하지 않았다! 바로 눕혔다가 옆으로도 돌렸다가 엎드려서 터미타임도 하다가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엄마들이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거의 이해 못함...) 조금 징징거릴 때도 있었는데 안아서 달래니까 금방 그쳤고, 수업 내내 한번도 큰소리로 울거나 보채지 않아서 너무나 놀랍고 대견했다.

오늘은 첫 날이어서 다함께 노래 부르면서 자기 이름과 아기 이름 말하면 다같이 불러주면서 익히고, 간단한 동작을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동작은 엄마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발구르기, 손뼉치기, 창문 닦는 것처럼 손바닥 펴서 양 옆으로 흔들기 등등. 그 외는 그냥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 나는 손뼉치기를 했는데, 이 때 이유가 웃어가지고 다들 웃으면서 이유를 귀여워해줬다. 다 엄마들이고 아기랑 있다보니, 서로 서로 아기를 엄청 귀여워해준다.

아기들 옷 입히고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수업 종료 15분 전부터 옷을 입히라고 한다. 이 때 모든 아기들이 다 칭얼대며 울었는데, 이유 혼자 안울었다. 기저귀 갈고 옷 입히고 가방 정리하는데, 옆에 엄마가 ' 이유 피곤한가봐 ^^ ' 해서 보니, 스르륵 잠이 들어 있었는데 정말 놀라웠다. 그동안 집에서는 단 한번도 낮에 이렇게 혼자 가만히 있다가 잠든 적이 전혀 없었다. 낯선 곳에서 이리저리 탐색하고 경험하느라 단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썼는지, 금새 잠이 깊게 들었다.

그리고 수업 중간 중간 다들 수유도 하고 기저귀도 갈고 진짜 자유로웠다. 그래서 이건 사실 뭔가를 배워가거나 아기 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거나 하기 보다는, 엄마들의 외출 + 기분 전환 +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 나누며 공감대 형성 + 육아 동지 만들기가 주목적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말을 안하고 있던 나 조차도 일단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저 반가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기들이 다같이 매트에 누워서 팔다리 파닥이면서 있는 광경이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고 재밌고 반갑고 너무 귀여웠다. 중간에 아기들이 울거나 칭얼거리면 다들 하이톤으로 우쭈쭈쭈 하면서 아기에게 말 건네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전반적으로 정말 새롭고 그동안 살면서 겪은 것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이었다. 이유가 태어난 뒤로는 진짜 모든 것이 다 처음인데, 이게 한번도 생각해보지도 않고 기대해보지도 않던 광경들이라서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이제 앞으로 6번의 수업이 남았는데, 그동안 다른 엄마들과 얼마나 친해질지도 궁금하고 (물론 나 하기에 달렸지만) 이유가 다른 아기들과 함께 하면서 좀 더 자극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이 첫 날이었는데도 맨날 집에서 나랑 올빠하고만 있을 때랑 여럿이 다른 아기들과 있을 때랑 다른 점이 벌써 보여서 앞으로 기대가 많이 된다. 그리고 나도 반강제적으로나마 독일어로 더듬더듬 어쨌든 한두마디라도 내뱉고 독일인들을 만나고 하면서 두려움도 좀 깨부수고 운이 좋다면 친구도 사귀고 하고 싶다.

나도 화이팅 이유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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