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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리스또란떼'를 갔다. 무려 예약까지해서. 후후후... 얼마만의 외식이었는지 모르겠네.
 
바기진씨 남자친구분이 밀라노에 여행 왔다고 해서 시내에서 만나서 밥 한끼 먹기로 했는데 도무지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는거다. 이건 마치 서울 및 수도권에서 12년 초중고 다니고 대학 4년 다녔는데도 서울 시내에서 친구들 만나면 뭐 먹지? 괜찮은데 없나 이러면서 찾는거랑 똑같다. 그리고 여기는 외식값도 너무 비싸기 때문에 밖에 나와서 돌아다녀도 밥 안사먹을 때가 많다. 가봐야 맥도날드 -_-... 젤라또.. 써놓고보니 불쌍하네.. 

이태리 레스토랑 몇 번 가보니 별거 없다고 느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로마에 있을 때 너무 복에 겨운 생활을 했나...;; 그리고 집에서 파스타 이리저리 시도해보니 밖에서 사먹는 맛 나고 내가 만든 게 더 맛있고 이태리 음식 아니 유럽, 서양 음식 자체가 그냥 거기서 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는 그냥 구워서 소스 끼얹고 야채는 그냥 데치거나 역시 굽고 파스타는 노르웨이, 영국, 독일, 스웨덴 등등 어디를 가든 죄다 있고 이제 더이상 이태리 음식이 아닐 정도다. 피자와 더불어 전세계인의 음식..전세계가 원산지.. 한국 음식이 정말 조리법이 다양하고 소스도 다양하고 본의 아니게 한국음식 예찬론자가 되고 있다. 

그리고 처음에 잘 모를 때는 이태리 어딜가나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오스테리아 다 맛있어 우와!! 이랬는데.. 노노~ 여기도 맛없는 곳 정말 많다. 

 여기저기 좀 가다보니 이제는 안티파스토 - 전채요리- 르 색다르고 맛있게 하는 곳이 끌린다. 심플하게 보이고 뭐 기껏 샐러드 종류, 치즈 종류, 살라미 종류 뭐 이렇게 보이기는 한데 양념 별로 안치고 재료의 맛을 잘 살려서 하기가 은근 힘들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치즈, 살라미 다 좋아하는데 슈퍼에서 사다가 집에서 먹기는 좀 뭐하다. 양이 너무 많아서.. 이태리애들처럼 맨날 햄, 치즈 먹는 것도 아닌데 맨날 썩어서 버리기 일쑤.. 그래서 그냥 밖에서 가끔 살라미 모듬, 치즈 모듬 이렇게 먹는게 훨씬 낫다.  

아무튼 대략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외식을 거의 안했는데 이러다보니 생활이 좀 심심해지고 재미없는 것 같아서 몇개월 전에 '밀라노 좋은 음식점' 이란 책을 샀었다. 영어, 이태리어로 쓰여져 있고 밀라노에 있는 레스토랑, 와인가게, 식료품가게, 시장 등이 나와있다. 한달에 한번씩 여기 나와 있는데 가보자고 구빠랑 얘기했었는데 계속 안가다가 바기씨 남자친구가 온다길래 시도 해보았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으로 고른 곳이 바로 아래 조그만 사진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Rovello 거리 18번지에 있어서 이름이 Rovello 18 이다. 시내에 있고 일요일 저녁이고 해서 사람 많을까봐 무려 예약! 까지 해서 7시 반에 갔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좀 고리타분한 - 좋게 말하면 시골 주방처럼 친숙한 - 분위기 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산뜻했다. 벽에 걸려있던 그림 때문인가.. 


사진은 구글에서 찾음. 크기가 너무 작네.. TRATTORIA 라고 쓰여있음.
피에몬테 지방에서 시칠리아까지 이태리 전 지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책에 쓰여 있었음. 

* ristorante, trattoria, osteria 다 그냥 식당으로 보면 된다. 
레스토랑이라고 더 비싸고 트라토리아라고 더 싸고 이런거 별로 없음..


벽은 하얀색. 그림 걸려있다. 작가 이름 책에 나오는데 모르겠음...


책에 ' 색색깔의 컵들로 장식해 놓았다 ' 이런 설명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노란컵, 파파란컵 이런걸 말하는 것임;;; 좀 황당했음............책에는 이걸 굉장히 특색있는 것처럼 써놓아가지고;;

아무튼 자리잡고 잡아서 메뉴판을 받았는데...헉! 완전 심한 필기체 꼬부랑 글씨도 쫘악- 쓰여 있는게 아닌가...!
진심으로 뭐가뭔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맨 밑에 자리세 3유로, 물값 2유로 이런건 영어로도 쓰여 있더라. 뭐지... 하긴 이태리 아니고 다른 나라여도 이태리 식당 가면 메뉴를 그대로 이태리어로만 써놓은 걸 보긴 했다. (요리에 관한 이태리어는 이제는 그냥 세계공용어 취급을 받는듯??) 그래서 그냥 영문 설명을 안붙여놓은 것인가...그럼 아예 다 하지 말지 자리세, 물값만 왜 써놨대..

아무리 메뉴판을 들여다보아도 몇 가지 빼고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아래 사진의 할아버지에게 설명 부탁했다..알아보기 어렵다고 하니 이태리 사람들한테 그렇단다. 그럼 왜 이렇게 써놨어? ;;; 그래도 할아버지가 굉장히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죄다 몰또 부오노~ (완전 좋아~맛있어~) 라고 하긴 했지만.. 
 

부부가 운영하는 듯..아줌마 이름은 Cinzia..
이 아줌마의 아빠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미슐랭 별1개 받았다고 책에 쓰여 있었다. 그리고 Cinzia 아줌마의 특별 레시피 중 하나가 밀가루 없이 만드는 케잌이라고 함..(난 먹지 않았음. 후식까지 먹음 너무 비싸....)


식당 입구에 늘어져 있는 와인들 !! 우오오!!

소규모(?) 식당치고 와인을 잘 갖춰놓았다. 이태리 전지역 레드, 화이트로 나눠서 총 400여 종류의 와인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와인리스트 보니 760유로, 480유로 하는 와인도 있다. 헉..과연 이걸 이 식당에서 시킬 사람이 있나 싶었음.. 제일 저렴한 와인은 22유로였다. 하우스 와인은 적혀 있지 않던데 물어보면 주겠지. 

뭘 마실까 .. 리스트를 봐도 뭐 아는게 있어야 고르지;; 그나마 토스카나 키안티 와인이 좀 안전할 것 같아서 보니 몬테풀치아노가 좀 저렴한 가격이 있었고 최근에 마신 morellino di scansano 도 22유로 정도여서 이거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할아버지에게 다시 도움 요청 !! 뭐 찾냐면서 추천해줄까 이러길래 좀 싼거 찾는다고 얘기하니 ^^;;; 다시 한번 완전 친절하게~ 설명 들어간다. 이거는 니가 시킨 고기 음식이랑 같은 지역에서 만든 와인이라 잘 어울릴것이고 morellino di scansano 도 이거도 완전 진짜~ 좋고 이거도 좋고 저거도 좋고 4가지 종류를 추천해주었다. 

모렐리노~ 좋다고 계속 강조해서 이거 할까 하다가 '고기랑 같은 지역 와인이라 잘 어울려~' 멘트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 도전! 하는 마음으로 피에몬테 지방의 barbera d'alba 2005년산 (Cappellano 와이너리)을 시켰다. (와인 설명은 따로 하겠음 ㅋㅋ) 2005년 산인데 26유로로 생각보다 안비싼것도 한몫했다.

할아버지가 와인 가져와서 시음해보라고 하는데... 내가 시음할 것이란걸 바로 간파함.. '저 여자분이 시음할거지~ ^^ ? ' 나는 이 때부터 완전 들떴다. 한모금 마시는데 오~ 좋아 좋아. 향도 좋고.. 할아버지 설명 또 이어진다. 이 와인을 좀더 오래 놔두면 향이 더 올라와서 풍부해진다고~ 좋다고. 음식 먹으면서 계속 마셔보니 진짜 그렇다. 약간 달콤한 과실향도 나고 그냥 진짜 맛있었다. 

사실 내가 2005년산 이런건 안마셔봐서 더 그랬을지도...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올라가고 슈퍼에서는 파는 건10유로 이하이고(그래도 맛있음) 비싸봐야 30유로 이하(종류도 몇 개 없음) 여서 2007년 와인이 오래된 축에 속한다. 그렇다보니 신의 물방울에서 흔히 나오는.. '잘 익은' 레드 와인은 마셔본 적이 거의 없다. 뭐 이거도 토미네 잇세, 칸자키 시즈쿠 (신의 물방울 주인공) 애들한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와인이 되겠지만-_-;  

아무튼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음식은 샐러드 2종류와 salsiccia(소세지) 를 안티파스토로 시켰는데.... 소세지가 생고기였다! 길쭉한 소세지 모양도 아니었고 햄버그 스테이크 동그랗고 납작하게 뭉쳐놓은 모양으로 한덩이 나왔다. 도대체 뭐야 이게!! 맛을 보니 '생' 맛도 안나고 냄새도 안나고 그렇긴 했으나 심히 당황했다. 샐러드는 올리브 오일만 한 두 방울 뿌려서 나왔다. 야채 그냥 물에 씻어서 올려놓고 끝! 이런 느낌.. 역시 좀 당황했다. 그동안 가봤던 이태리 식당 음식들과 조금 달랐다. 진짜 이태리 가정식이 이런 것인가 ;; 솔직히 외국사람들은 좀 적응하기 쉽지 않을듯.. 


* 바로 위의 사진처럼 나왔다. 살씨챠!! 이게 어딜봐서 소세지임? 
할아버지가 molto(=very)를 3번씩이나 넣고 강조해서 말하길래 믿고 시킨건데...
(사진은 햄버그 스테이크로 검색해서 찾음)


하나는 carciofi (아티쵸크) 와 pecorino 치즈 샐러드였는데.. 카르쵸피 절인것 일줄 알았는데 그냥 카르쵸피 날거 얇게 자른 것이었다..;;;; 또 하나는 호박꽃, 새우 샐러드 였는데 아주 가볍게 익힌 새우를 올리브오일, 식초 등등 해서 마리네이드 역시 가볍게 해서 생호박과 야채랑 같이 나왔다. 호박 진짜..그냥 물에 씻어서 조그맣게 잘라서 내놓음. 호박꽃도 역시 마찬가지.. 이 위에 올리브 오일 두세방울? 하하.... 몸에 좋긴 하겠지..그리고 소스도 매우 적게 써서 진짜 그야말로 '호박꽃, 호박, 카르쵸피' 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도 있겠고... 그러나 나는 이태리 사람이 아닌지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구글링 했는데 사진 안나오는 걸로 보아 이태리 사람한테도 그리 친숙한 샐러드 스타일은 아닌듯;;)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양이 좀 적었다. 이태리 요리는 그냥 투박하고 푸짐한 양이 생명이거늘... (프랑스처럼 막 따져가며 먹고 격식차려가며 먹지 않는다) 

좀 미식가들이 찾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음.. 아 사진도 없이 그냥 설명으로만 이렇게 하려니 지루하구나..;;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다. 세꼰도!! 파스타 없이 바로 세꼰도.. Tagliata di fette di vitello con patate (송아지 고기 자른것과 감자) 와 Tartar 를 시켰는데.....타르타르가 충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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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타르타르임!! 이건 고기속에 뭐 좀 들어갔네...


내가 시킨것 위의 사진에 좀더 가까웠다. 높이는 저거보다 좀더 높았고.. 
타르타르? 나는 고등학교 급식 때 한달 식단표에 생선까스, 타르타르소스 이거만 보고..타르타르는 
생선까스인데 뭐지 이건...그치만 할아버지가 추천하니 믿어보자~ 해서 시켰는데..
헉... 이거는 예전에 종로에서 기메륜과 육회, 육사시미 먹었을 때..그거 아니야? 여기는 이태리인데....;;

어쩐지 주문받을 때 ' 이거 원래 위에 계란이랑 같이 나오는데 어떻게 할래~' 이러길래 ' 왠 계란? 삶은 계란 얹어오나..뭐지? ' 하면서 그냥 계란 없이 달라고 했는데.. 그나마 잘한 선택인듯.. 먹어보니 역시 냄새는 안나고 그럭저럭 생각보다 괜찮았으나 안티파스토 햄버그 스테이크 반죽 모양을 가장한 소세지 때문인지 계속 당황 + 황당 + 당황 + 황당 마인드였다. 

그리고 위 사진과 달리 옆에 저런 곁들임(?) 없었다.. 사진 올리려고 타르타르 구글검색 해봤는데 이태리요리는 아니고 미국, 유럽 등  서양에 전체적으로 널리 퍼진 요리이다. 나름 역사도 오래되었다. 칭기스칸이 있던 시절 말타던 몽골 사람들에 의해 생겨났으며, 타르타르라는 이름은 지옥을 뜻하는 라틴어 Tartarus 에서 유래되었다. 로마 사람들은 타타족 (중앙 아시아를 돌아다니는 칭기스칸 군대)을 야만스럽고 잔인하고 미개하고 거칠다고 여겨서 r 을 이름에 집어넣어 지옥, Tartarus 와 연관지었다고 한다. 타타족이 러시아를 정복했을 때 러시아 사람들에게 이 요리가 전해졌고 러시아에서 독일로 넘어갔고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가면서 미국에도 퍼졌다고 한다. 음식에 대한 유래를 알게 되니 나름 재미있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 클릭!!  영어지만 글이 짧고 어렵지 않음. 혹시나 외국 어디가서 타르타르 메뉴가 있으면 주의하길 바람.. 나처럼 생고기 + 계란 노른자 인거 모르고 시키지 말기를...


Tagliata di fette di vitello 는 아래 사진과 비슷했다. (구글 검색함..아래 사진은 완성된 요리는 아니고 조리 과정중인 날고기 사진이나 내가 먹은 건 고기를 아주 살짝 초초초 레어로 익힌 고기였음..)


고기 잘라서 살짝..정말 살짝 익혀서 그위에 녹색 통후추를 얹어서 나왔는데 육질이 굉장히 부드러웠다. 감촉좋은 극세사 이불 만지는 느낌??? 진짜 부들부들~ 맛있었다. 같이 나온 감자튀김도 전혀 안짜고 기름기도 없고 괜찮았다. 

전반적으로 안티파스토 부터 세꼰도까지....고기 파티.. 그것도 생고기 파티를 한 느낌이었다. 바기씨 남자친구분..아무리 아무거나 다 잘 먹는다지만 조금 많이 당황했을듯..나와 구빠도 매우 당황했었는데 오죽하셨을까..그래도 나름 저녁 즐기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 언제 또 이런걸 먹겠느냐면서... 

간만에 수다떨고 와인마시고 사람도 만나고 즐거웠다. 외국에 있으면서 가장 그리운게 친구들하고 술 한잔, 밥 한끼 먹으면서 까르르- 웃고 시덥잖은 얘기하고 그러는것인데...여기서는 못하니... ㅠㅠ 기분좋게 일요일 저녁 마무리했다. 

다음에 여기 또 가게되면 생선요리 먹어봐야지..너무 고기파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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